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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면 마음이 통하네" 완도 월부마을의 휴양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3.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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詠盆松 
山中三尺歲寒姿   산속의 석자나무 풍상겪은 그 모습
移托盆心亦一奇   화분에 옮겼더니 또 한번 기특하네
風送濤聲來枕細   바람은 속삭이듯 베갯머리에 와서 닿고
月牽疏影上窓遲   가지에 걸린 달은 창에 뜨기 더디어라 
枝盤更得裁培力   힘들여 가꾸기에 새 가지 돋아나고
葉密會沾雨露私   이슬비 흠뻑 젖어 잎마져 무성하네 
他日棟樑雖未必   동량의 재목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草堂相對好襟期   서재에서 마주 보면 마음이 통한다네
                                                              - 전녹생 

 

 

석자 소나무 분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고려 문신 전녹생(1318 ~ 1375) 선생의 영분송이다. 신지면 월부마을에는 비록 석자 분재는 아니지만 대 자연에 비추어 본다면 영분송과 다름없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다. 월부마을의 수호신이자 사장나무라 불리는 수백년 된 쌍(雙)소나무이다.      


신지면 동부지역의 중심지인 월부마을.
이곳은 섬이지만 바닷가가 멀어서 파도소리는 들리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고 마을의 방향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어 1900년대 초까지 음음리(陰音里)라 하였다고 한다, 월부마을은 현재 160여가구 280여명의 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마치 쌍둥이 형제 같은 이 소나무는 평소에는 마을의 사장나무이지만 정월이 되면 당산나무가 되어 마을의 무사안녕을 비는 신목(神木)이 된다. 월부마을은 이 신목을 할배당(할아버지 당사)이라 하고 당제를 모실 때는 임시로 움막을 쳐서 제를 모시고 제가 끝나면 움막을 철거하였다고 한다.  두 그루 다 해송인데 북쪽의 나무는 수고가 16미터이고 흉고둘레 2.1미터, 수령은 200여년으로 가지는 옆으로 길게 뻗어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지대를 받쳤다, 이 나무는 수고가 높아 균형이 잘 잡혀있다.  


당제를 모시는 남쪽의 소나무는 수고 8m 흉고둘레 2.5미터 수령 250여년으로 수고가 낮아 마치 한그루의 분재처럼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이 소나무도 가지가 사방으로 길게 뻗어 북쪽의 나무처럼 지지대로 가지를 받쳐 태풍으로부터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여 놓았다.   

 

할배당 소나무
할배당 소나무

 

이 두 그루의 소나무가 마을 뒤쪽 둔덕에 심어져 수호신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소나무들도 한때는 위기에 처하였다고 한다, 소나무 주변의 흙이 무너지고 뿌리가 여기 저기 엉키고 설켜서 밖으로 드러났는데 마을에서 군청에 건의하여 보조금을 받아 옹벽을 쌓고 복토를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때 목포대학교 교수들이 방문하여 나무에 대한 다양한 자문을 무료로 해주었는데 복토 이후 나무의 수세가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한다.  

 

 

 1970년대 두 그루의 해송은 여름철이면 월부마을 주민들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월부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김영수(67. 월부마을 이장, 우측 사진)씨는 ″옛날에는 여름철이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거기로 모여요.” 


“정월 초 삿날 당제를 모실 때 는 소나무가 신목(神木)이 되지만 당제가 끝나고 여름이 되면 마을의 커뮤니티 센터가 됩니다, 농사일과 바다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 집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등등 마을의 크고 작은 이야기가 거기서 모두 소통되고  회자됐어요.″


″우리가 애릴 때는 저기를 그냥 사장이라 불렀어요, 어른들은 나무 아래서 덕석을 깔고 장기를 두거나 삼봉(화투놀이의 한 가지)을 치고,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어른들이 가끔씩 수박을 먹는데 우리도 한 조각씩 얻어먹어요”
“시골이라 특별한 간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참 맛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노는데 우리는 다마치기(구슬치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는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장에 오르면 바람이 불어서 시원한께 아침밥만 먹으면 저그 사장에 모여서 놀거나 아니면 석화포로 가서 수영하고 놀다가 점심때면 돌아와서 밥 먹고 또 사장으로 가서 놀고″. 


″나무가 크지 않아도 우리 놀이터 였어요, 나무에 올라 마치 원숭이처럼 막 달려 다녔어요. 그래서 나무 가지마다 우리들이 지어놓은 이름이 있어요, 이 가지는 임금님자리, 저 가지는 노 젖는 곳, 또 다른 가지는 화장실 터 등등...... 그때는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서 타고 놀기도 했는데 저 소나무가 그렇게 인간에게 고통을 받고도 용케도 잘 살아 남았습니다″.      


소나무 주변 정비 후 지금은 몇 가지 운동기구도 설치하고 정자를 지어 마을 주민들이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고 몇 그루의 후박나무도 주변에 심어 마을 쉼터로서 정비를 잘 하여 놓았다. 아쉬운 것은 월부마을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농악을 칠 사람이 없어 4년전부터 당제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수 백년 역사를 지닌 당제는 사라졌지만 마을의 수호신인 쌍 소나무는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지역의 훌륭한 경관자원이다.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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