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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템과 샤먼의 확산, 해양문화 시대 열었다 (18)

완도의 장수도, 제주의 사수도 영토분쟁 (18)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3.22 10:56
  • 수정 2024.04.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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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읍리에 있는 고인돌 유적지
청산면 읍리에 있는 고인돌 유적지

 

선사시대 인류가 완도의 여러 섬에 정착했고, 그들이 사수도 해역을 생활거점 삼으면서 해양문화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질서유지를 위해 집단을 통제할만한 제도가 필요했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사후세계의 두려움과 변화하는 자연현상 적응을 위해 개척해야 할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다. 그래서 종교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 나려고 구원의 수단으로 종교를 만들었다. 종교는 권력의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그들이 믿는 것은 전적으로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자연 숭배사상이 발전하면서 영적기원의 토대를 얻었지만, 주변 환경의 제약도 많았다. 숭배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초월적인 일들을 구상했다. 그러면서 자연현상을 대표하는 수만 가지의 영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숭배했고, 모든 권력의 표현에 복종했다. 그것들을 지켜보면서 신비한 하늘의 섭리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의식 중에서 돌을 숭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 뒤에는 산을 숭배하는 문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신들이 산에서 산다고 그들은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산은 그들이 믿는 신과 연결되면서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또, 인류는 대지와 공기와 물과 불을 숭배해 왔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는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래서 더욱 집단을 형성했고, 초기에 이런 형태의 생활방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


그 당시 부족의 족장들은 영웅이었다. 그들이 죽고 나서는 신으로 추대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서 신을 만들어냈다. 사람을 숭배하는 일은 통치자의 요구에 따라 하늘이 선택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인식했을 때 종교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처럼 자연숭배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지성에서 생겨났다. 이 영은 아무리 원시적이라도 사람들 마음 속에 남아서 종교의식의 욕구를 항상 불러일으켰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숭배행위를 자극했고, 자연의 대상물에 집중했을 때도 영은 무엇인가 숭배하고 싶은 인간의 충동을 자극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숭배한 대상은 돌이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운석은 강력한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거석문화의 존재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돌은 단단하고 변하지 않은 산물이라서 그 형상은 인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들은 돌에 있는 구멍을 특별하게 여겼다. 구멍이 많은 바위는 병을 고치는 데 특별히 효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돌을 숭배하는 문화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서도 신석기시대 인류의 흔적 발견에 이어 청산도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인돌 분포지가 재조사됐다. 지난 2022년 청산면 지석묘 지표조사를 시행하여 예전보다 많은 유적을 발굴했다. 마한시대로 추정하는 고분도 발굴했고, 그곳에서 철기의 유물도 다수 수습했다. 이로써 사수도 해역을 무대로 활동한 고대 인류의 활동상이 점점 더 가시화 되고 있다.


거석문화는 세계 인류가 추종하는 공통이다.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연석이나 가공한 돌로 구조물을 축조한 행위나 돌을 세워 숭배의 대상이나 무덤으로 이용한 문화를 통틀어 거석문화로 구분한다.

 

그들은 돌을 세워서 자연의 여러 가지 현상과 인간의 생사를 기원했다. 더 나아가 기쁨과 공포의 대상을 표현하는가 하면, 지도자를 추모하고, 풍작과 수확물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하늘에 전했으며,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등의 표적을 남겼다. 거석문화의 유적이 주로 큰 바다 인근에 분포한 것을 보면 대양을 항해하는 개척정신과 해양문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크다.


청동기시대의 인류가 청산도에서도 정착해 세력을 이룬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동안 완도의 모든 섬에서 선사시대 유적조사가 면밀히 이뤄지지 않아서 하마터면 묻힐 뻔 한 것들이 많다. 그들의 발자취를 유추해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큰 세력이 사수도 해역에서 폭넓게 영역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 기대감에 홀연히 감춰졌던 비밀의 열쇠가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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