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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

기사승인 2021.04.30  11: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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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도를 완도지역 문화예술의 메카로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간극차이
그것은 문화 예술의 힘

 

차마 원교의 채취를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나는 이번 한 주간 더 신지도에 머물기로 했다. 아니, 원교의 마음이 그리움의 화신이 되어 나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신지도 어디를 가더라도 내 눈에는 온통 원교 이광사의 발자취만 보일 뿐이다. 명사갯길을 걸어 봐도, 명사해변을 거닐어도 동고리를 지날 때에도 어디에나 원교의 채취가 느껴질 정도다.
지난 28일 새벽, 신지도 일대를 탐사하다 다시 들려본 원교 적거지는 온데간데 없이 빈터만 남았다. 신지중학교 담벼락 리모델링은 거의 끝났고  벽화를 그려 벽면 전시를 할 계획인 것 같다. 


금곡마을 정자에는 ‘원교 이광사 문화거리 조성사업’ 프랑카드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원교가 심었다는 동구 밖 소나무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수없이 많은 계절이 피었다가 지는 동안 저 나무는 오롯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폐허 상태였지만 여태 헐리지 않고 보존된 적거지가 남았음에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것은 원교의 사상을 이곳 주민들도 나름대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교는 과연 시대의 불운아였을까?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이제는 더 이상 원교가 외롭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제 원교 이광사 문화거리는 여느 관광지와 같은 느낌으로 조성될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행정을 탓할 일은 아니다. 사업이 완성되면 그것을 언론이 세상에 알릴 것이고,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삭막함이 머무는 공간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여태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으니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한국에 유학 온 중국인 대학생들을 데리고 전남의 유산 탐방길에 나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하는 말이 한국은 어디를 가나 하나같이 같은 느낌의 관광지라는 것. 축제를 가더라도 같은 모습, 비슷한 프로그램이라며 이것저것을 지적했다. 지역마다 각각의 특색을 생각했던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관광자원은 하나 같이 공통된 내용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부터 내 자신도 우리의 관광자원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내 놓은 방책이 있었다. 문화유산에 관심 가는 만큼 거기에 예술적 가치를 적용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여러 장소의 풍경사진에 몰두한 패턴을 바꿔 사진예술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 주변의 것들이 작품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눈에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간극을 예술의 힘을 빌려 극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문화의 거리, 예술의 힘을 적용하자


예술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목포문화연대가 2013년 전남문화예술재단의 화가를 선정해 ‘남도 유배섬 길을 따라 걷다’라는 주제로 여수의 돌산, 신한의 흑산, 우이도, 임자도, 지도, 진도, 완도, 보길도,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10개 지역을 기행 답사하며 현지 작품을 제작하여 청산도 철부선 상에 작품을 전시했다. 한국화가 4명, 서양화가 2명이 유배섬 현지 제작 작품 35점을 출품했던 것이다.


목포문화연대는 서남해 섬 유배지역을 대상으로 외로운 절도에 온 유배인과 낯선 이방인을 맞이하는 섬사람의 만남, 갈등, 교류 속에서 피어난 옛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를 화가의 기행 문화답사를 통한 현대적인 문화를 재해석했다. 그들이 생활했던 곳의 자연과의 소통의 과정을 화첩으로 제작하여 현대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예술을 구성하여 미술을 통한 남도문화의 새로운 재발견을 추구하여 새로운 남도문화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신지도에 온 화가들은 명사십리 해변에서 이세보의 절규의 찬 모습을 화폭에 담았고, 송곡의 언덕을 보며 지석영과 소때의 이미지를 화폭에 그려 넣었다. 


작품의 소재를 담기위해 주민들의 증언이 인터뷰에 나온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목포문화연대 회원들은 "유배자들에 의해 유입된 중앙의 학문과 문화는 섬의 기존 문화와 융합돼 한차원 높은 문화를 뿌리 내렸다"면서 "답사를 통해 화가들의 기행 화첩, 시민들의 유배 섬 체험, 학생들에게는 현장 학습을 통해 남도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난 뒤 2019년 매년 8월8일을 섬의 날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전남 목포에서 '남도 유배 섬'을 소재로 한 화첩 기행 전(展)이 열렸다. 목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태관 화가는 섬의 날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다 본 '남도 유배 섬을 가다'란 주제로 화첩 기행전을 개최했던 것이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남도 섬을 중심으로 답사 기행하며 현지에서 화첩에 수묵화 작품을 그려 왔다. 거기에는 완도의 섬 풍경과 이곳에 찾아온 유배자의 이야기도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원교 이광사 문화의 거리에 수묵비엔날레가 열린다면...


 얼마 전 나는 그동안 완도에서 열렸던 서예전을 도록을 통해 관람했다. 거기에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서예가들의 작품이 보였다. 놀라웠다. 이것은 원교 이광사의 이름만으로 권위 있는 전시회를 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매년 목포와 진도가 선정되어 수묵비엔날레가 열린다. 나는 신지도에도 수묵비엔날레가 열릴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품어 본다. 문화예술 여행객들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신지도를 예술관광메카로 만들면 그러한 관광객들이 신지도로 올 것이다. 수묵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이웃 동네에서 열리는 길 위의 인문학 팀을 따라 나선 적이 있다. 거기에서 나는 행촌미술관을 관할하는 이승미 관장과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문화예술적 자산이 너무도 많은 자신의 지역을 예술관광 메카로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관장은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예술관광을 떠나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내려와 살다보니 문화예술적 자산이 너무도 많았다며, 그 자산을 활용해 풍류남도아트 프로젝트와 3년간 수묵비엔날레와 연계한 수묵기행을 이어왔다고 했다.
일본의 예술 섬 나오시마는 한때 철광산업을 하던 곳으로 섬 주민이 50명 정도 남을 만큼 폐허가 된 섬이었다. 그런데 한 기업가가 미술관을 짓고 예술섬으로 만든 결과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와 행정가들이 찾아오는 꿈의 섬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열정과 투자가 있어 가능했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엔 세계적인 문화예술관광의 트렌드가 됐다고 한다. 그는 수묵비엔날레를 이용해 세계의 많은 큐레이터들을 지역으로 오게 하고, 그들이 돌아가 소문을 내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대화를 나는 이웃동네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신지도에도 적용되어야 할 사항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정지승 다큐사진가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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