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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전팔기, 아직 끝나지 않았나 ‘김신’

30년 의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신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1.04.30 10:46
  • 수정 2021.04.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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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참 난감한 이름이다. 완도 정치사에 있어 이처럼 선명한 이름 두자가 있었을까!
군수 출마자들이 가장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하는 후보자. 그래서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지만 현재는 모진 풍상의 고초를 겪고 있는 김 신 전 의원.
정치와 뗄 수 없는 선거 전쟁, 김신 전 의원에겐 많은 변수와 선택이 있었다.
현 목포시장인 김종식 전 군수와 정치적 라이벌 구도를 완성하며 40대 군수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지난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군수 후보 경선에서 신우철 현 군수에게 1%포인트 차이로 분루를 삼킨 김 전 의원.


경선 당시 김신 후보는 49.05%였고 신우철 후보는 50.96%로 한 명은 5만 군민을 대표하는 지자체장으로 다른 한 명은 광야에 선 야인으로 서로의 운명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순간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차라리 신우철 후보와 민주당 결정전이 아닌 무소속으로 가 맞붙었더라면?
2018 지방선거에서도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김신 전 의원의 경우엔 국민의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로 완도군수에 도전할 수 있었고, 국민의당 후보와 무소속으로 도의원 1선거구 2선거구, 다시 또 초심으로 돌아가 군의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국민의당으로 출전해 선거운동원도 쓰지 않고 가족끼리 치룬 선거전이었다.


그리고 46표 차로 낙선.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그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완도군의회의 30년 역사 속에서 김신 전 의원을 능가하는 파괴력은 없다는 게 이제는 정설로 굳어질 듯하다.


어찌 보면 김 전 의원에게 지난 도의원 선거는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만큼 굴욕적이었다.  정객 A 씨는 "지난 지방선거에선 김신 전 의원은 신우철 군수의 지지자들이 지역 갈등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명분을 내걸며 떠밀리듯 도의원 선거에 나가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물론 신우철 군수가 초선이라 여론 관리가 좋았고 여론 또한 압도적이라서 쉽사리 승부를 걸지 못한 속내도 있었겠지만, 김종식 전 군수와의 정치적 라이벌로서 군수의 꿈을 꾸고 있는 그로서는 도의원으로 선회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군수 도전에 서 낙선을 하게되면 차기를 노려볼 순 있으나 너무 오랜기간 무관(無官)으로 전락하면 정치는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도의원 선거에 낙선할 경우에도 향후 정치생명까지도 장담할 수 없을만큼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는데, 당선을 예상했던 선거마저 져 버렸다"고 전했다.


지난 도의원선거에서 김 신 전 의원은 개표과정에서 줄곧 노화·소안 권역에서 438표 차이로 이철 현 도의원에게 밀리다가 완도읍 권역 투표함 뚜껑이 열리면서 역전에 성공했지만 부재자 투표에서 밀리면서 결국 46표차로 패배했다.
얻은 것이라곤, 자녀들의 열성적인 응원. 아들 김원일 군과 딸 김원정 양. 새벽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선거운동 마지막날까지 아버지의 선거 승리를 담은 김 양의 피켓 인사는 몇 번의 낙선으로 인한 김 후보에 대한 피로감을 넘어 동정론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김 군은 노화에 아예 숙소를 잡고 기거하면서 노화·보길 권역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다.


아들 딸 잘뒀다는 말만 듣고 패배.
그렇게 모든 게 끝났나 싶었는데, 김신은 아직도 살아 강력한 군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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