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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의 맑은 소식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92]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13 15:25
  • 수정 2019.12.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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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차를 맛깔스럽게 잘 우리다가도 순이른 새벽, 3시반경의 하늘은 어찌 그리도 맑을까? 총총이 떠있는 별들의 속삭임이 머리를 맑게 샤워하듯 시원하게 씻어내며 교교히 감싸 안은 듯 어깨위로 내려와 앉는다. 12월의 초순인대도 포근함이 역력하다. 무슨 일일까 싶다. 인기척을 들었을까? 한켠에서 잠자던 다둥이와 복실이가 달려와 꼬리치며 인사를 건넨다. 이에 질세라 꼬꼬돌이가 천공을 갈라놓을 기세로 요란스럽다. 저도 있다며 짐짓 신고하는 것일 게다. 하늘의 진기를 가득 머금고는 좌복에 앉는다. 맑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는 나의 영식도 교교하고 쇄쇄하여 초롱초롱하다. 숨길도 고요하니 몸기운의 파동도 고요해 진다. 태고의 정적처럼 마음의 파동위에 아주 미미한 촛불하나 켜두고 응시하듯 나의 법계를 관조한다. 텅 비어 고요한 가운데 삼세의 법식이 총총하게 교감하고 있음을 들여다본다. 그 짧은 찰라가 시간반에서 두 시간에 이른다. 공동체 일과라 멈추기 아쉬운 경계를 가만히 거두어 들인다. 

찻 자리로 옮겨 앉아 찻물 올려두고 거둔 마음 살며시 풀어 맡겨본다. 미세한 물의 진동이 경쾌하게 잡아 끌고, 그대로 하나 되어 물속으로 녹아든다. 쏴하는 소식과 격랑의 소식, 이를 등파고랑이라 했던가! 선지식의 표현이 어찌 이리도 적실할까! 감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멈춘 고요의 소리! 손사위는 허공위에 춤을 추고 명장이 빚어놓은 천기(天器)를 가지런히 배열하여 다신을 쫓아 물의 정령을 앞세운다. 아! 백회를 뚫고 천공에 피어올라 법계를 가득채운 향기로움이여!

그렇게 맑음 속에 법계에 올린 헌공의 향례가 오늘이라는 생을 풍요롭고 복되게 가꾸어 줄 것이다. 절묘한 인연의 소식일까! 은선의 흙으로 빚은 천기를 가지고 오겠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승의 시공을 넘어 건네 온 존귀한 인연의 소이! 차 한 잔이 가져온 묘연이다. 일체의 섞임 없는 순수의 지기(地氣)에 담긴 신목(神木)의 한 잎 한 잎으로 만든 깊은 정성의 공력과 하나 될 순간이다. 아마도 태초 이래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설레이고 벅찬 일인지 누가 있어 알까? 현실속에 역력히 나투어 지게 될 신묘한 인연의 소이! 이른 새벽 천공의 소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묵묵히 그 성스러운 뜻을 바 없이 받아들인 순간 하늘은 밝게 열리고 있다. 은선동이 서서히 밝아온다.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어 진다. 결코 스스로 지은 바를 벗어날 수 없어 숙명처럼 돌고 돌지만 누가 있어 그러한 소이를 알아차릴 수 있으랴! 문득 함께하는 인연도 더불어 미소지으니, 오호라, 천재일우여! 귀하고도 소중하여라! 잔에 담긴 차는 처음과 같이 여여함을 알겠더라! 색은 백자에 옥색으로 투명하여 맑고, 향은 이르러 만리밖에 충만하니, 맛에 이르러 감윤함의 조화를 이루었다. 

그랬다. 도가의 공부인과 중국에서 활동중인 도예가 한 분. 그리고 시작된 다담과 법담들! 밤깊은 줄 모르고 찻자리의 향은 은선동에 가득하고, 다시 시작된 다음날 아침 7시의 찻 자리. 못다 나눈 공부담과 빚어온 천기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그 사발에 말차 이야기를 가득 담았다. 단연 옥천자의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었다. 차향에 흠뻑 젖는다. 그리고 승용차로 7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곳을 향해 나서는데, 아쉬움만 안은 채 진한 이별가를 나눈다. 속 깊은 공부인과의 만남, 그리고 나눌 수 있는 공부담! 세상 그 어느 도락이 이만할까? 깊은 산중의 농군에겐 홍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귀한 인연과 법의 향기를 나눈 법열 가득한 법락차를 마셨다! 법락차 한 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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