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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갖는 최고의 맛(2)!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86]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1.01 11:29
  • 수정 2019.11.0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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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앞서 차가 갖는 최고의 맛을 감윤함이라고 하였다. 이때 최고라는 의미를 여러 종류 가운데 최고, 즉 1등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차가 갖는 고유의 성정을 가장 잘 드러내었을 때의 맛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은, 차가 갖는 고유의 성정이 성분과 효능적 측면에서 카테킨의 떫은맛과 해독적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비유하면, 지인 한 분은 서각을 탁월하게 잘 하신다. 작품을 보면 가까이 두고 늘 보고 싶을 만큼 갖고 싶어진다. 뿐만 아니라 서예의 대가이시다. 또한, 그림에도 매우 조예가 깊으시다. 젊은 날에는 기업체의 대표로서 경영자이기도 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극한 열정으로 예술적 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는 참으로 멋진 분이다. 또한 찻자리에 함께 하며 좌우 지인들과 더불어 행복한 시간들을 나누며 가꾸고 계신다. 즉 어느 한 가지로 그분의 특성을 단언하기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차도 마찬가지이다. 차가 갖는 다양한 특성은 어떤 차인을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투어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그 무엇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단순한 기호음료에 그친다면 맛있게 우려내어 잘 마시기만 하면 되고, 약리적 작용에만 의지한다면 그에 맞는 방법으로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외에 마시는 모습과 다양한 표현방식과 활용 방법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어떤 예술적 행위보다 더 아름답고 멋스러우며 장엄하게도 표현할 수 있고, 우리의 실생활에 맞게 얼마든지 응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그 어떤 표현 예술과도 접목이 가능하여 매우 다양한 형태의 종합적인 문화 콘텐츠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하여  소통문화의 꽃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해본다. 차는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닌 것이다. 또한 약용으로만 쓰이지도 않는다. 제대로 잘 만들어진 최고의 차는 진정 차를 사랑하는 차인을 통해서 다양한 우리네 삶의 시대사상과 문화적 패턴을 창조하여 만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바꿀 수도 있다. 이와같이 묘하게도 차는 인간의 정신적 다양한 특성들을 정형화 시킬 수 있는 특성마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를 정신문화의 꽃이라 한다. 

그러므로, 차가 갖는 최고의 맛은 단순하게 음료로써의 차가 아닌, 찻 자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묘경을 체득하여 스스로 향유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적 멋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홀로 마시는 것을 ‘신(神)의 경지’라 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카테킨의 떫은맛, 카페인의 쓴맛, 아미노산의 감칠맛 등등만을 어찌 차의 맛이라 할 수 있으며, 해독작용과 각성작용과 강심작용 등 수많은 효능만을 어찌 차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여유로운 멋스러움은 곧 인간의 정신적인 면의 근간을 들여다보고 느끼게 해 주며 존재의 본질적 성정과 하나되는 명상과 직접적인 관련성마저도 가지고 있다. 특히 한중일 삼국에서는 차인이자 위대한 철학적, 종교적 사상가들의 공통적 특성이 바로 차와 명상을 둘이 아닌 하나라 여기는데 있으며, 그 선인들의 실천적 삶의 향기는 그야말로 새로운 정신문화의 지평을 열어주는 가장 신선한 역사적 사건의 단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는 다른 기호음료들처럼 홀짝 하고 마셔내는데서 그치거나 그 특성을 정의하기에는 그 표현이 부족하며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용히 앉아 정성스레 차 한 잔 마셔보자. 그리고, 내게 있어 그 차 한 잔에 담긴 차의 맛은 어떠하며, 또한 내게 있어 어떤 의미로 다가 오는가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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