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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으며 살아온 둥근 꽃

[완도의 자생식물] 118. 각시취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18 11:35
  • 수정 2019.10.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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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전체에서 온다. 온몸을 흔드는 억새도 그가 살아온 만큼 모든 것을 가을 햇빛으로 토해낸다. 

삶은 부분에서 오지 않는다. 밤새 물 자락을 흔드는 기러기도 하늘로 날아갈 때는 자기 몸도 부족하다. 진실로 살아간다는 것은 억새처럼 온몸을 흔드는 것이다. 마른 꽃 같은 오이풀과 가을 하늘 옷자락을 만지고 있는 각시취 꽃은 봄에 피는 꽃처럼 앙증스럽게 가을 숲을 노래하고 있다. 

오이꽃은 마른 가을 서정을 흔들게 하지만 각시취 꽃은 여름에서 오는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 있다. 이 두 꽃이 가을 들판에서 다른 풀과 기대지 않고 홀로 꽃대를 곧장 하늘로 올리고 있다. 
그들의 소망이 가을 하늘 속에서 피어나게 하듯 영혼을 밝히는 일에 온 힘을 들이고 있다. 각시취는 가을 들판에 자라는 국화과 풀꽃이다. 신부의 상징색이 붉은 계열이다 보니 짙은 분홍·자주·보랏빛 예쁜 꽃을 보고 각시를 붙였나 보다. 흔히 ‘각시’는 각시수련과 각시붓꽃 그리고 각시원추리 등이 있는데 작은 꽃으로 연약하다. 예쁜 들꽃에 붙이는데, 각시취는 키도 크고 튼튼해 보이는 점이 좀 다르다. ‘각시’는 아내의 다른 말로서 주로 갓 시집 온 새색시라고 부른다. ‘취’는 나물을 뜻하는데, ‘채’(菜)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린 순은 봄에 나물로 해 먹는다. 잎에 털이 있어서 ‘참솜나물’이라고도 한다. 가을 볕 따사롭게 내리는 풀밭에 연지 곤지인 듯 분홍 꽃송이를 달고 있는 각시취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날마다 같은 가을 길을 가지만 가을의 들꽃은 새롭게 이슬을 내려 피어있다. 단 한 송이 꽃 위에 햇빛 한 줄기로 단아한 가을 풍경을 만들어 내는 야생화 가시취이다. 

어쩌다 간신히 꽃대를 하늘로 올려 그들 나름대로 자유롭게 피었지만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차분해진다. 가시취꽃은 하늘을 바라보고 나는 그를 바라보니 마치 이웃과 세상이 하나인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꽃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살아가라는 뜻인 줄도 모른다. 먼지 한 톨도 야생화 같은 삶에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연약하고 나약한 삶에도 서로가 인연이 되면 꽃이 되고 열매가 된다. 운명 같은 각시취꽃 삶에서 단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날마다 가을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있다. 이른 봄에 연보라 각시붓꽃이 아주 연약한 꽃잎으로 나뭇잎을 뚫고 나온 지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낙엽 지는 침묵의 달밤이 각시취 꽃을 은은하게 지나가고 있다. 향기 나는 삶에는 가장 가까운 시간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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