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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꽃

[완도의 자생식물] 112. 취나물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9.09 09:12
  • 수정 2019.09.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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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 참취나물을 취나물과 산나물이라고 부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작은 연보라색 붓꽃이 필 때 참취나물의 색싹이 나온다.

이 나물이 나올 때면 봄산이 점점 가깝게 다가와 연분홍 진달래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였는데 벌써 가을 산에 취나물 끝에 하얀 그리움이 아쉽게 산등성을 넘어가고 있다.

봄에 진달래 꽃술을 담아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가을 참꽃이 필 때 꺼내면 100일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 날이 오늘이라며 당장 마시러 오라는 산꽃 향기 같은 아저씨. 그 마음이 진달래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 같다. 참취꽃은 키는 1미터 쯤 되지만 꽃은 아주 단출하여 가을바람을 다 잡아 낼 수 있는 꽃이다.

참취꽃 밑으로 하얀 낮달을 잡아두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피어있는 산국화는 가을 해빛에 눈부시다. 봄에 취나물은 입에서 향기가 나고 가을의 취나물은 눈빛에서 향기롭다. 처서가 지나면서 가을꽃들이 얼굴을 내민다. 꽃잎도 여물다는 느낌이 든다. 그 무성했던 잎사귀가 점점 사그라지고 꽃잎이 그 사이를 채운다.

모든 식물들이 때가 되면 오고 가는 법이다. 취꽃은 그 자체로는 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식물과 보면 여운이 남는다. 단출하기 짝이 없는 꽃잎도 파란 하늘과도 잘 어울린다.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춤을 추는 그 모양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들판에 고마리도 무성한 잎을 젖히고 꽃을 피운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 때문에 꽃이 더디게 핀다. 이런 꽃들을 보면 마음이 애잔하다.

예전에는 꽃잎이 듬성듬성 달려 있어 꽃답지 않아서 그런지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 꽃보다 취나물 꽃이 정겹다. 이제 몸도 마음도 빈틈이 생겨 미완의 존재들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가을의 분위기를 모두 감싸는 데에는 지나온 길만큼 부재한 것들이 많았다. 당장 없다고 불평한 시절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부족한 면이 많았다. 이른 봄에 새싹이 올라 어느 정도 넓적한 잎을 달아서 사람들에게 나물로 먹게 하고 여름 지나 가을이 오면 잎사귀가 없는 듯 꽃대만 올려놓는다. 다른 꽃들과 함께 자랄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둔다.

꽃잎에 내려앉은 석양빛을 한 순간이라도 더 잡아두고 싶은 계절이 가을이다. 낮이 점점 짧아져 참취꽃도 그리운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보잘 것 없는 하얀 작은 꽃잎이 내 옆에 한없이 두고 싶다. 서로 부족한 면을 눈감아 주고 그윽한 마음의 향기만 피는 꽃.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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