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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산새의 지저귐 스스로 피는 꽃의 경청

[완도의 자생식물] 102. 털중나리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7.12 13:47
  • 수정 2019.07.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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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꽃들이 내 안에 한참 들어와 있을 땐 내 나이가 한참 흘렀다. 나이가 들기 전에 산에 꽃들이 그렇게 멀리 있더니만 지금은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여기저기 꽃들이 많이 있기보다는 간간이 샘물이 보이듯 그 옆에 피어 있으면 행복하다. 내 몸에 필요 이상 걸쳐 입기보다는 최소한 것들로 입으면 내 마음에 편한 옷이 된다. 산에 꽃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그렇게 아름다움울 수가 있을까. 그것이 오래된 나이가 가르쳐 준 즐거움이다. 산에 꽃은 안개비에 얼굴 젖어도 눈물은 향기롭다. 

 정결한 샘물도 산나리꽃 속에서 붉은 물이 되고 싶다. 비탈진 계곡에서 피어 먼 훗날 강물이 되고 싶지만 지금은 산에서 있는 게 더 좋다. 안개비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털중나리꽃은 숲 속에 수줍게 핀다. 산비 내리는 아침 숲 속에서 농염하게 입술을 열고 주근깨 묻은 얼굴이 부끄러운 듯 안개비에 묻혀다가 소낙비처럼 가슴을 열고 나타난다. 특히 이 꽃은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 잘 보인다. 초록 잎에 물기가 묻은 곳에서 맑은 산소를 만나는 것처럼 깊은 숲속에서 활짝 피어있다. 마을길엔 치자나무 향기가 뼛속까지 하얗게 스며든다. 습기가 많아 축축해질 만도 한데 이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결 뽀송뽀송해진다. 산길에는 노란 원추리와 큰까치수염꽃이 드문드문 피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색이 되어주고 있다. 약간 숲속을 들어가면 정결하게 꽃잎이 피어서 맑은 샘물로 되돌아갈 것 같은 하늘말나리꽃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작은 꽃이지만 숲 속의 피아노 연주처럼 맑고 경쾌하게 피어 있다. 

 털중나리꽃은 야생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어긋나고 피침 모양으로 온몸에 잔털이 있다. 6~8월에 노란색을 띤 붉은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있는 꽃이 줄기 끝에 핀다. 산지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각지에 분포한다. 나리꽃 종류는 꽃이 피는 방향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땅을 보면 땅나리.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중간을 보면 중나리라 한다. 한 두 송이 간간이 피어서 밝은 새소리만큼 활짝 피어 시냇물소리처럼 명랑하게 재잘댄다. 

 빗방울이 산나리꽃잎에 맺힌 숲속에는 맑게 갠 산새소리가 청아한 바람을 만들어 놓는다. 이렇듯 산속에선 숨 쉬는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샘물이 꽃을 보고 꽃은 그 마음을 본다. 너도 하나, 나도 하나 서로 홀로인 존재들끼리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한때 밖에서만 찾았다. 모험과 방랑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젠 스스로 피는 곳에서 그 마음을 경청할 것이다. 이미 산에 꽃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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