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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났던 순간을 찾아 뜨겁게 사랑하리

[에세이-고향생각]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5.20 08:10
  • 수정 2019.05.2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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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 정채봉, 사실 나는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간 것은 그가 간암투병 중에 써 내려 갔던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 길>을 산책하듯 거닐다가 <면회사절>이라 써 붙인 그의 병실 앞에서 간호사인 나의 마음이 멈춰섰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지요. '살고 싶다고, 새로운 삶을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 너를 생각했지 / 풀잎 하나를 보고도 / 너를 생각했지 /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 이 세상에 없어 / 너를 생각하는 것이 / 나의 일생이었지

그의 <스무 살 어머니>에는 열 일곱에 시집 와 열 여덟에 채봉을 낳고 스무 살에 세상살이를 마치신,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늘 애틋한 마음으로 일생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흔적들이 절절하게 녹아있었지요.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 단 5분 /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 원이 없겠다 /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 엄마! /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 숨겨놓은 세상사 중 /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 일러바치고 / 엉엉 울겠다.

 "엄마!"하고 불러보고 싶은, 내 두 눈에서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코끝이 얼얼해 집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살고있는 동심은 바로 엄마, 고향, 바다......, 그리고 그 동심을 찾아가는 것, 그것은 내 안에 나를 찾아가는 것 이라고 그가 말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를 기념하는 순천 문학관에는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라는 문구가 마치 그를 한 마디로 요약해 놓은 듯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면 꼭 찾아 가 보려고 합니다. 그곳에 간다면 그의 체취가 끈적하게 묻어있는 매일매일 써 내려간 메모지와 일기장들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그의 딸 리태가  <샘터> 잡지에 남긴 글을 읽으면서도 나의 가슴은 다시 먹먹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요 우리아빠, 참 눈물이 많았죠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예쁜 꽃을 봐도 커다란 눈이 호수처럼 차 오르던....."

눈물이 많은 거 만큼은 나도 그를 닮은 듯 합니다. 어쩌면, 그 많은 눈물들이 크고 작은 세상의 티끌들을 씻어내고 동심으로 존재와 생명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에서 가장 잘한 일 한 가지를 이야기 하라면, 나는 내 삶을 사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했기에 내게 다가 온 당신 역시 고귀하고 아름다웠노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렵니다.

54세에 작고하신 정채봉선생님, 그가 그토록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셨던 삶, 오늘 나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그가 만나고 싶어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찾아가 아이처럼 뜨겁게 사랑하려 합니다. 지천에 피어난 들꽃 들에게도 눈을 맞추며 산들바람처럼 귓가에 속삭여 주고 싶습니다. "나도 이젠, 꿈의 날개옷을 입고 마음껏 날아 볼거야!" "야호!"?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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