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탐라국(제주) 건국신화 세 공주 건너온 벽랑국은‘금일 소랑도’

(사)한국해양탐험문화진흥회 채바다 이사장, 2006년 "벽랑도=소랑도"주장…탐라국 건국신화, 고대 완도-제주 결혼동맹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8.10.26 09:04
  • 수정 2018.10.28 19:12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완도 금일읍 소랑도는 전국 다시마의 80%를 생산하는 금일읍에서도 다시마가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시마 건조철이면 온 섬이 다시마 건조장으로 변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이 작은 섬이 탐라국(제주의 옛지명) 건국신화와 연결돼 있는 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탐라국의 건국신화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에 위치한 화산 지형인 삼성혈에서 시작된다. 삼성혈은 지반이 꺼져 있고 구멍 세 개가 움푹 파여 있는데 여기서 제주의 시조이자 수호신인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삼신인이 솟아났다고 전해진다.

조금 더 탐라국의 건국신화 내용을 들여다 보면 벽랑국의 세 공주가 바로 탐라국을 건국하는 세 성씨와 혼인을 하게 되는데, 제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여인들로서 삼신인과 혼인하여 탐라국의 기틀을 잡고 농경문화를 전수한 인간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동쪽 바다를 바라보니 목함이 떠 다니는 것을 발견하여 목함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알모양의 상자와 푸른 옷을 입은 사자가 들어있었다. 사자가 말하길 "나는 동해 벽랑국의 사자 올시다. 우리 임금이 딸 셋을 낳아 잘 키웠는데 베필을 찾을 수 없어 한탄 하던차에 하루는 자소각에서 서쪽 바다를 보았는데 바다에는 섬이 있고 그위에 명산이 있는데 명산에서 자주빛 기운이 돋는 것을 보고 신에게 이르길 "저 섬에 계신 분은 장차 대업을 이루실 분."이라며 신에게 삼공주를 모셔오게 하셨습니다. 부디 큰 국업을 이루소서."라 말하며 구름을 타고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삼을나가 알 모양의 상자를 열어보니 그곳에는 말과 소, 오곡 종자 그리고 삼공주가 들어 있었다. 삼을나는 삼공주와 연못에서 목욕재계하고 연못 옆 동굴에서 신방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후세에 사람들은 삼공주를 맞은 곳을 연혼포, 그 들이 목욕한 연못을 혼인지, 그들이 신방을 이룬 동굴을 신방굴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 탐라국 건국신화에서 세 공주가 왔다는 벽랑국은 과연 어디일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벽랑국이 어디에 있던 나라인지는 문헌사료나 유적,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히 알길이 없었고, 학계에서는 대체로 부족국가시대의 완도지방에 있던 소국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학자들 간의 견해가 서로 달라 벽랑국이 상상의 나라이거나 일본이라는 설 등이 난무했다.

이것이 2006년 세 공주가 왔다는 벽랑국을 찾아 뱃길 탐험을 떠났던 (사)한국해양탐험문화진흥회 채바다 이사장이 그 해 12월 완도군과 공동으로 탐라국 탄생신화에 등장하는 벽랑국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개최한 ‘탐진항로와 해상왕국 벽랑국’이라는 학술심포지움에서 “탐라국 신화 속 벽랑국은 완도 금일읍 소랑도”라고 주장하면서 “벽랑국=소랑도”가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채 이사장은 벽랑국이 완도지방의 고대 소국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완도 인근의 지명과 전설, 지리적인 근접성 등을 들어 완도 금일 소랑도가 벽랑국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벽랑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문헌을 보면 고려사지리지(벽랑도:탐진현1454년), 동국여지승람(벽랑도:강진현1486년), 신증동국여지승람(벽랑도:강진현1530년), 동여도(벽랑도:강진현1861년), 대동여지도(벽랑도:강진현1864년)에 벽랑도의 기록이 보인다. 또한 기록에서 벽랑도의 섬 규모는 4리라고 돼 있다.

여러 고서에서 채 이사장이 탐라국 건국신화 속에 등장하는 벽랑국으로 확신하게 됐고, 전남의 지명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자료들을 분석하여 여러 권의 연구보고서와 도서들을 펴낸 바 있는 진도문화원 김정호 원장을 만나 “벽랑도가 바로 완도 금일 소랑도가 맞다”라고 동의를 얻어내기도 했다.

"문헌과 유적, 말과 생활상, 문화의 동질․유사성, 지리적 접근성, 해류와 조류, 계절풍 등을 이용하는 항로 등에서 제주와 완도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탐라국 건국신화 속에서 벽랑국 세공주를 통해 완도와 제주간에는 고대부터 인적, 물적 교류와 지리적 접근성이 인근의 시·군보다 매우 빈번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채 이사장은 말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의 수렵채집인들이 농업문명과 국가조직체계를 받아들여 탐라국을 세우는 과정을 ‘영주지’의 탐라국 신화는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동아시아의 선진문명의 전파루트로 볼때 한반도의 벽랑국에서 제주도로 건너간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탐라국 건국신화는 완도와 제주가 결혼동맹을 맺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상호 도민의 뿌리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완도(벽랑도)-제주(탐라국) 교류는 고대나 현재나 여전히 유효하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